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부 사이드 칸 (문단 편집) === 추판 가문의 난 === 아미르들의 난 이후 추판은 1319년 9월 사티 베그와 결혼하였다. 그리고 추판의 아들들인 티무르타쉬, 샤이크 마흐무드, 하산, 데마스크 카자는 각각 아나톨리아, 조지아, 호라산, 아제르바이잔 총독에 봉해졌다. 이로써 추판 가문은 사실상 일 칸국의 영토 대부분을 사유화하였다. 그러던 1322년 티무르타쉬가 마흐디를 자처하며 반란을 일으키자 추판이 손수 토벌에 나서 아들의 항복을 유도하였고, 아부 사이드로부터 총독위 재임명까지 받아내었다. 한편 아부 사이드는 추판의 딸 바그다드 하툰과 사랑에 빠졌는데, 그녀는 이미 하산 잘라이르와 결혼한 유부녀였기에 추판은 칸에게 사랑을 포기하도록 설득했지만 소용 없었다. 1325년 아부 사이드는 추판에게 딸과의 결혼을 요구했지만 추판은 이를 거절하고 그녀와 하산 잘라이르 부부를 카라바흐로 보냈다. 그리고 1326년 추판과 아들 하산은 마침 아제르바이잔을 침공한 우즈베크 칸과 호라산을 침공한 차가타이 칸국의 알라 앗딘 타르마쉬린에 맞서기 위해 출정하였다. 그 틈에 아부 사이드는 추판의 막내아들 데마스크 카자가 올제이투의 부인들 중 하나와 불륜을 했다는 이유로 처형하였다. (1327년 8월) 소식을 들은 추판은 분노하여 칸에 복수하러 출정하였고, 카즈빈 인근에 주둔하였다. 셈난의 셰이크 알라 앗다울라가 주재한 협상이 결렬되자 추판은 약탈을 자행하며 라이 방면으로 나아갔다. 칸의 진영과 하루 거리인 쿠하에 이르렀을 무렵, 아부 사이드의 숙부 무함마드 베그를 포함한 상당수의 에미르들이 추판에게서 이탈하여 3만여 병력과 함께 칸에게 귀순하였다. 추판은 잔여 병력과 도주하였고, [[사베흐]]에서 부인 사티 베그를 칸에게 보낸 후 [[타바스]]를 거쳐 [[카르트 왕조]]령 헤라트로 피신하였다. 카르트 군주 기야스 웃딘은 그를 환영했지만, 그해 10월 아부 사이드의 명령이 하달되자 (명예로운 방식인) 교살로 처형하였다. 이후 아부 사이드는 바그다드 하툰을 하산 잘라이르와 이혼시킨 후 그녀와 결혼하였다. 바그다드 하툰은 부친의 주검을 무함마드 가문과 [[사하바]]들이 매장 메디나의 알바키 묘원에 안장하였다. 추판의 아들들 역시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먼저 데마스크 카자에 이어 조지아 총독 샤이크 마흐무드가 타브리즈로 압송되어 처형되었다. 아나톨리아 원정 중이던 티무르타슈[* [[아피욘카라히사르]]를 점령하는 등 기세를 올리고 있었으나 추판의 반란 소식에 [[카이세리]]를 거쳐 [[시바스]]로 회군, 칸에게의 항복을 고려했으나 형제들이 연이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후 그해 12월 [[카라만]]을 거쳐 1천 병력과 함께 [[맘루크 왕조]]로 망명하였다. 베스니에 이르러 그는 다마스쿠스 총독 탄키즈의 영접을 받았고, 이듬해 1월 술탄 [[앗 나시르 무함마드]]의 환대를 받으며 알렉산드리아 총독위까지 제안받았다. 2월에는 사촌 샤힌샤가 합류하였다. 한편 아부 사이드는 아나톨리아에 남은 티무르타슈의 부관 에레트나 대신 [[오이라트]]계 삼촌인 아미르 무함마드를 총독으로 봉하였다. 또한 아부 사이드는 카이로로 사절을 보내어 티무르타슈의 처형을 요구했으나 술앗 나시르는 거절하였다.]는 [[맘루크 왕조]]로 망명, 술탄 [[앗 나시르 무함마드]]의 환대를 받았으나 점차 갈등을 빚은 끝에 일칸국에 망명한 맘루크 인사의 처형을 대가로 1328년 8월 처형되었다.[* 술탄과 티무르타슈의 우호 관계는 오래가지 못하였다. 카라만 베이 이브라힘 1세와 하미드 후국의 베이 나즘 앗딘 이샤크가 티무르타슈의 무슬림들에 대한 악행을 고발하고 이집트 내에서 티무르타슈의 위상이 점차 높아지자 앗 나시르가 경계하게 되며 둘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결국 1328년 6월 티무르타슈는 트리폴리의 사자 성채에 감금되었고, 다음달 일칸국의 사절이 재차 당도하여 1312년 올제이투 칸의 시리아 원정 시에 귀순했던 알레포 총독 카라순쿠르 (아크순쿠르)의 인도를 대가로 티무르타슈의 처형을 제안하였다. 아크순쿠르는 귀화 후 [[아바카 칸]]의 딸이자 전 조지아 왕비이던 올자타이와 결혼하였고, [[마라게]] 태수가 되었다. (함께 귀순한 트리폴리 총독 알 아프람은 하마단 태수가 되었다) 그럼에도 아부 사이드 칸은 티무르타슈의 처형을 위해 그를 처형하였다.사후 수급은 아부 사이드에게 보내졌고, 몸은 카이로 사자의 도시에 파리스 앗딘 아크타이 옆에 매장되었다.] 가즈니에서 차가타이 군을 격퇴한 하산만이 부친의 처형 소식에 파르스-케르만 총독을 맡던 아들 탈레스와 함께 우즈베크 칸에게 귀순하여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